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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학은 크게는 그리스 로마 정신과 기독교 정신이라는 양대 사조의 교체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교체는 시대의 정신과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이는 문학의 전개가 문학 자체의 연계성과 함께 문학 외적 현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양 문학은 동양 문학이나 제 3 세계 문학과 함께 세계의 문학을 구성한다. 각 지역의 문학은 그 지역이 가지는 역사적, 사회적 성격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변화를 계속하여 왔다. 서양 문학의 흐름을 개관해 봄으로써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문학이나 문화의 근본에는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전통과 유태를 중심으로 한 신본주의(神本主義) 전통이 교체되어 내려 왔다. 이 두 사상은 시대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성해지거나 시들어지며, 또 서로 융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인간 본위의 현세주의(現世主義) 사상이 성해서 신앙 본위의 내세 사상이 눌려 있었고, 중세의 암흑 시대에는 이와 대조적으로 신앙 본위의 사상이 인간 본위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본주의에 대한 인본주의의 주도권이 분명해지면서 찬란한 문예부흥을 이루었는데 여기에는 두 사조의 양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두 사조의 교체는 인간의 본성에 있어서의 현실주의적인 것과 이상주의적인 것 가운데 어느 측면이 강조되는가 하는 데 따라 달리 나타나는 양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실주의적이라는 말은 종교적이라는 태도에 대비되는 뜻인데, 이것은 그리스 정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를 낳은 유대 민족의 정신을 말한다. 그리스 정신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을 주장하고 인간의 이성을 믿어서 그 위에 아름답고 올바른 세계를 세우고자 하는 인간 본위의 정신이다. 이에 반하여 유대 정신은 현세의 모든 향락을 배척하고 천국과 영혼을 중시하는 유일신(唯一神) 중심의 사상이다.


 그리스 문학의 창시자는 호머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 내려오던 것을 호머가 갈고 다듬어 완성하였다고 하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묘사가 간결하고 힘차며 내요이 풍부하고 비유가 많아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대서사시로 서양 서사 문학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작품이다.


 서양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그리스의 극문학(劇文學)이다. 그리스의 비극은 본래 매년 2월에 열리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처음에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어서 비극적인 느낌은 없었다. 나중에 와서 신화나 전설에서 재료를 취하고 묵직한 제재를 다루게 되면서 비극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비극 시인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한편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테네스는 호머에게서 영향을 받고 또 전래의 제재를 제공받아 그리스의 극문학을 일시에 꽃 피게 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탐구한 문학의 본질은 서구 문학의 원류를 이루었다. 플라톤은 시의 목적은 훌륭한 시민을 기르는 데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시에 대하여서도 도덕성과 철학성을 갖추기를 요구하였는데 이는 그의 철학 사상의 면모를 보여 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강조한 이데아설에서 문학이 멀리 떨어진 가상(假像)의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여, 시인을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은 서양 문학사상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는 플라톤과는 달리 문학이 인간의 보편성을 표현함으로써 역사보다 우월한 형식의 예술로 보았다. 이후의 문학 작품은 대부분이 그의 시학에서 제시된 기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시를 대표하는 것은 극시(劇詩)이고, 또 극시를 대표하는 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하였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1세기에 세워졌는데, 로마 문학은 그리스 문학을 모범으로 삼아 출발하였다. 로마 제국의 최성기에도 그 대부분은 헬레니즘의 세력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 문학은 라틴어로 씌어진 헬레니즘 문학이라고도 한다. 로마의 최대 학자로 일컬어지는 키케로나 호라티우스, 퀸틸리아누스, 롱기누스 등이 그리스 문학을 전범(典範)으로 삼을 것을 주장한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유럽의 중세는 5세기로부터 14세기까지의 약 1000년에 걸치는 기간을 가리키는데, 이 시대의 문화는 아름다운 것(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 )을 멸시하고 지상적(地上的)인 것, 현세적인 것을 거부하는 풍조(風潮)가 주류를 이루었다. 카톨릭의 엄격한 내세주의(來世主義)와 금욕주의(禁慾主義)가 인간성의 자유로운 발전과 신장을 억눌렀기 때문에 이 시대를 암흑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학은 종교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창작의 자유가 허용되었으며, 자유로운 문학적 활동은 오히려 대중들에게만 허락되었다. 일반 대중들은 시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로맨스 이야기를 들려 주는 이야기꾼 앞에 모여 춤 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이리하여 상류 계급이 아닌 대중들 사이에서 노래와 이야기가 퍼졌는데, 중세기의 로맨스는 민간에서 생겨나서 민간에서 육성된 민중의 문학으로 주목할 만하다. 14세기에 이르러 중세기의 최후를 장식하는 문호(文豪) 단테가 나타나는데, 그가 이탈리아어로 쓴 '신곡(神曲)'은 중세인의 우주관, 세계관을 잘 반영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 사상도 형상화하고 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학문과 예술, 곧 문예 부흥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었던 유럽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럽의 모습은 바로 르네상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을 향하여 바쳐졌던 정열은 일제히 인간적인 것, 지상적인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것은 열렬한 사랑과 탐험, 정복, 그리고 과학상의 발견과 발명으로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잘 할 줄 아는 인간이 이 시대의 이상적 인물이었다.  ( 더 자세히 보려면 르네상스 2 )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친 자유와 분방의 폐해(弊害)가 드러나자, 문인`학자들은 그 때까지 무시되어 왔던 제약과 법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모범과 이상으로서 그 역사적인 적응의 유형과 순수 가치 개념으로서 독립적인 고전 요소가 미묘하게 균형을 이룩하는, 그야말로 중용과 절도를 추구하는 고전주의 정신이 17세기에 대두된 것이다.


 18세기는 이성(理性)과 산문 문학(散文文學)의 시대였다. 과학적으로 이유를 탐구하고 도덕을 논하며 계몽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산문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시민 계급이 성장하여 감에 따라 묵은 제도와 정치,종교에 대해 불신과 회의도 나타났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시민들의 계몽을 위하여 백과 사전을 만들고 지식을 보급시키는 데 힘썼다. 이러한 계몽과 각성이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전 유럽에 큰 충격과 자극을 주어서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하였다. 혁명 정신에 바탕을 두고 개성의 권위를 주장하며, 법칙과 규범을 타파하여 개인의 자유를 부르짖는 문예 운동도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낭만주의 문학은 이러한 시대 정신을 반영하여 자유롭고 참신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객관적인 형식이나 이성을 배척하고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을 앞세우는 것도 낭만주의 문학의 특색이다. 이러한 문학관은 작가의 무한한 자유와 부동성(浮動性), 대상의 다양화와 무형식성, 생성의 연속성을 그 본질적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현실을 무시하거나 도피하는 문학이 대거 나타난 것도 이 문학 운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는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과 비참한 일이 표면화되었고, 그 결과 유럽 전역에 심각한 사회적 불안이 감돌고 있었다. 작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똑똑히 바라보고 이 비참한 현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실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 불공평과 부정,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자 하는 사실주의(寫實主義) 운동이 나타났다.


 사실주의 운동은 현실을 똑바로 보고자 하는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공평하고 비참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였다. 이 당시의 사실주의 작가들은 그 내면에 이러한 사회 개선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작가에 따라 대상을 보는 시각과 해석이 다르므로, 현실에 대한 파악이 서로 같지 않았을 뿐이다.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너무나 어둡고 비참한 현실을 그린 리얼리즘(사실주의) 문학, 인간의 운명을 기계론적으로 인식한 자연주의 문학에 싫증이 난 사람들은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꿈을 추구하였다. 스티븐슨이 '보물섬'이나 '새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쓴 것은 이러한 독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기말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유미주의(唯美主義)와 상징주의 문학이었다. 유미주의는 사회에서 유리되어 오직 감각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 빠지려고 하는 경향을 보였다. 상징주의는 사실이나 감정이나 사상은 직접 표출시킬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언어와 음악을 통해서 암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는 마음 속에 용솟음쳐 오르는 신비로운 샘물이므로 흔히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이 아니라 상징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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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개 과정


르네상스<Renaissance>( 르네상스 2 )


1. 역사적 배경 2. 초기 르네상스 3. 인문주의시대 4. 르네상스의 변질 5. 여러 나라의 르네상스


6. 르네상스에 대한 여러 견해


7. 르네상스문학


8. 르네상스미술


9. 르네상스철학



 중세와 근세 사이(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 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때의 르네상스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시대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의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라는 개념 형성은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F.페트라르카가 이미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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